瑞穂新聞 서수신문
제2호 · 서수 문화

서수면 백제고찰 상주사, 신라고찰 보천사

상주사는 백제 무왕 7년(606년) 세워져

상주사(上住寺)
백제 무왕 7(606년) 신라의 승려 혜공(惠空)이 창건하여 상주사(上住寺)라 하였다고 하나 당시 이 지역은 백제 영토였고 신라와의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던 무왕시대에 신라승려가 창건 하여다고 하니 확실하지는 않다. 1362년(고려 공민왕 11) 혜근(惠勤)이 중창하며 현재 이름으로 바꿨으며 고려말 공민왕이 이 절을 찾아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전한다. 1641년(조선 인조 19) 취계(鷲溪)가 중수하고, 1762년(영조 38)에는 학봉(鶴峯)이 중수하였다. 오늘날에는 특히 나한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 유래가 전한다.

1834년(순조 34) 임피현(臨陂縣) 수령 민치록(閔致祿)이 꿈을 꾸기를 하얀 갓을 쓴 세 사람이 나타나 자신들을 높은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민치록은 세 번이나 같은 꿈을 꾸자 관리들에게 현에 특별한 일이 있으면 보고하라고 하였다. 며칠 뒤 서포(西浦)에 십육나한을 실은 배가 한 척 닿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민치록은 십육나한을 높은 곳에 있는 이 절에 모셨고 이후 십육나한은 많은 영험을 보였다고 한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관음전·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한 삼존불과 영산회상도, 신중·지장보살·독성·칠성·산신 등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삼존불 위 닫집에는 용두가 조각되어 있는데, 본래는 2기였으나 1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몰래 가져갔다고 한다. 용마루 위에는 청기와가 2개 얹혀 있으며, 상단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11개의 용두가 놓여 있다.

그밖에 대웅전 안에는 1646년에 제작된 업경대 2기가 있었으나 근래에 도난당하였다. 이 업경대는 거울 중앙의 둥근 구멍에 '순치 2년'이라는 연호가 기록되어 있었다. 하나는 크기가 112cm이고, 다른 하나는 60cm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상주사

보천사(寶泉寺)
대한불교조계종에 속한다.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조선시대에는 유문(有聞) 등이 머물면서 절을 중수하였으며, 민족 항일기에 사세(寺勢)가 기울어진 틈을 타서 일본인이 법당을 매입하여 일본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때 불상과 불구(佛具)는 숭림사(崇林寺)로 옮겨갔고 절은 폐사가 되었다. 최근에 옛 절터 옆의 언덕에 새 절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 요사채, 객사(客舍)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1689년(숙종 15)에 입적(入寂)한 유문의 부도(浮屠)인 축계당사리탑(鷲溪堂舍利塔)과 누구의 것인지를 알 수 없는 부도 2기가 있다. 이 중 축계당사리탑은 옛 절터에서 옮겨온 것인데, 그 때 사리함이 나와서 군산대학 박물관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또한 새로 세운 5층 석탑이 부도 앞에 있다. (출처: 보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지면 서수신문 제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