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제 이야기 — 노성식 어르신 인터뷰
이 마을에서 나서 구십사 년
조사자: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성식: 내가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이 마을에서 나서 구십사 년을 쭉 살아왔으니 아는 대로 이야기 해 줄게
조사자: 원용귀 마을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것이 있나요?
노성식: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을 신용귀 마을로 분가를 시켜서 큰 동네가 되었어. 돌아가신 노긍식씨 집안이 잘살았거든, 그러니 노가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지는 나도 모르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살다가 자식들을 중용귀까지 분가시켰고 그 집안에서 땅을 내놓아 마룡 국민학교가 생겼지.
조사자: 아 그렇군요. 좋은 일을 하셨네요.
노성식: 암 좋은 일이지. 그리고 이 마을에 귀룡청수의 명당자리가 있다는데 그 자리가 노긍식씨의 집 뒤야! 그래서 집안 조상들의 선영을 그리로 이장을 하였지. 거기서 보면 수시제가 바로 보이는데 그 방죽 물이 청수에 해당한다네 옛 어르신들의 말로는 수시제 때문에 명당의 발목을 받게 될 거라고 하더구먼
조사자: 그렇군요. 수시제에 내려오는 이야기는 없나요?
노성식: 그 뭐냐 옛날에 수시제 그 아래 넓은 들을 그 물로 농사를 지었어! 70년대 초까지도 요 앞 수시천에는 참게나 물고기들이 엄청 많았는데 지금은 농지정리가 되고 농약 때문에 물고기 씨가 말랐지만 송사리부터 붕어 잉어 장어 미꾸라지 등이 부지기수로 있었지. 어쨌든 수시제에 용이 살았는데 어느샌가 용이 나가고 가뭄이 들어 흉년이 들었어. 그래서 마을에서 풍장을 치고 제물을 장만하여 기우제겸 하천제를 지낸 후에 나갔던 용이 들어 왔다고 해. 그 뒤로 풍년이 들고 잘살았 데. 그래서 용이 되돌아왔다고 해서 용귀리 라고 불렀다나.
조사자: 그런 일이 있었군요
노성식: 그리고 이건 내가 직접 겪은 일인데 도깨비불이라고 있었지. 날궂이 날에는 저 넓은 들에 도깨비불들이 볏가리처럼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여 무섭기도 하였지. 그전에는 소를 잡지 못하게 하였어! 해방 직후 술 먹을 때 귀중이네 집에서 새벽에 몰래 소를 잡기로 하였는데 마룡초등학교 뒤쪽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죽었는데 그때는 톱 같은 연장이 없어, 그래서 화목으로 쓰려고 베려 해도 못 베고 있는 거야 우리 큰집에 마침 큰 톱이 있어 그걸 빌려다 새벽에 남들 눈에 안 띌 때 비는데 커다란 혼불인가 도깨비불인가 하는 것이 저 넘어에서 넘어오더니 상구씨 집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있다 나오더니 장곤리 공동묘지 쪽으로 나가더라고 그 뒤로 사흘 만에 앞에서 말한 대로 귀중이네 집에서 소를 잡는데 소피가 몸에 좋다고 하니 허니 상구씨가 소피를 먹었는데 목에서 소피가 엉기었는지 그분이 돌아가시었어! 그런 일이 있었지 암 있었지
조사자: 오늘 여러 말씀 감사합니다.
지면 서수신문 제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