瑞穂新聞 서수신문
기사 공유
연재소설 《천년의 미(米)》 제10회

서수라는 이름

― 서수 들판에 묻힌 백 년의 약속

서수라는 새 이름과 볍씨의 기억을 표현한 역사소설 자료 이미지
이미지 제작: 서수신문 편집국·AI 생성 이미지 ※ 실제 인물·현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14년, 임피의 행정구역이 크게 바뀌었다.

옛 동일면과 주변 지역들이 합쳐지면서 새 면의 이름이 정해졌다. 서수면이었다. 관청의 문서에 새 이름이 적히고 길목의 표지에도 낯선 두 글자가 붙었다.

이름이 바뀐다고 논두렁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탑천은 전날처럼 흘렀고, 사람들은 늘 다니던 길로 장에 갔다. 하지만 관청에 신고할 일이 생기거나 세금을 낼 때면 새 이름을 써야 했다. 늙은이들은 제 마을을 예전 이름으로 말했다가 관리에게 몇 번씩 되물음을 당했다.

“어디 산다고?”

“거그, 옛날 동일면 쪽이오.”

“지금 이름으로 말하시오.”

“사는 데는 그대로인디 이름만 새로 외우라니, 사람보다 동네가 먼저 글을 배웠구먼.”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킥킥 웃었다. 이름은 관청에서 하루 만에 고쳤지만 사람들의 혀에서는 오래된 이름과 새 이름이 한동안 부딪쳤다.

사람들은 이름부터 입에 올렸다.

“서수?”

“그게 무슨 뜻이여?”

“상서로운 벼 이삭이라는 말도 있더라.”

“누가 지었는디?”

“일본인이 지었다는 말도 있고.”

“확실혀?”

“몰라.”

춘매의 딸 금례가 참다못해 끼어들었다.

“모르면서 왜 말혀?”

사람들이 웃었다. 누군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 동네 전통이여.”

웃음은 가벼웠지만 소문에는 까닭이 있었다. 행정구역이 바뀌기 다섯 해 전인 1909년, 가와사키 농장 안에는 이미 서수신사라 불리는 신사가 세워져 있었다. 현판에는 ‘瑞穂’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상서로운 벼 이삭, 곧 잘 여문 벼를 뜻하는 이름이었다.

가와사키의 농장을 서수농장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농장과 신사에서 먼저 쓰이던 이름이 새 면의 이름으로 옮겨갔다는 말이 퍼졌다.

“그럼 가와사키가 면 이름도 서수로 하자고 민 거 아녀?”

“일본 공사관하고 관청에도 힘이 있었다잖여.”

“그걸 니가 봤어?”

“보진 못했제.”

“또 모르면서 말허네.”

사람들이 다시 웃었다. 그러나 질문은 남았다.

마을의 늙은이들은 오래전부터 불러온 들과 물길의 이름을 하나씩 댔다. 용전, 탑천, 황등과 만경의 물길. 그런 이름에는 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빠지는지, 어느 논이 먼저 마르고 어느 둑이 큰물에 약한지가 들어 있었다. 이름은 단순한 표지가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기억이었다.

그런데 ‘서수’라는 새 이름은 다른 곳에서 온 글자처럼 보였다. 듣기에는 길하고 번듯했다. 벼 이삭이 잘 여문다는 뜻도 이 들판과 잘 어울렸다. 그래서 더 묘했다.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이 누구의 입에서 처음 나왔는지, 왜 농장 신사의 이름과 같았는지를 사람들은 자꾸 묻게 되었다.

가와사키가 실제로 이름을 제안했는지, 행정당국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은 그들 손에 없었다. 1909년 서수신사와 1914년 서수면 사이에 다섯 해의 간격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둘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었다. 다만 농장의 이름이 들판의 이름을 덮고, 마침내 사람들의 주소가 되는 과정을 의심하는 마음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옥례도 새 이름을 입속에서 천천히 굴려보았다.

“서수.”

기석이 말했다.

“좋은 이름이네.”

“뭐가 좋은디?”

“상서로운 벼 이삭이라잖여. 쌀 잘되고 복 들어오는 이름 같잖어.”

옥례는 마당 한쪽의 빈 쌀독을 보았다.

“이름이 좋다고 사람이 잘사는 건 아니잖여.”

기석이 웃었다.

“당신은 세상 모든 말에 시비를 거는구먼.”

“말이 밥 먹여 줘?”

“가끔은 먹여 주제.”

“언제?”

“당신한테 잘못했다고 말하면 밥은 주잖여.”

옥례가 피식 웃었다.

“그건 말이 밥을 준 게 아니라 내가 불쌍해서 준 겨.”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다섯 살 복순은 마당 흙을 손가락으로 파고 있었다. 손바닥에는 볍씨 몇 알이 놓여 있었다.

옥례가 물었다.

“뭐 혀?”

“쌀 심어.”

“거기 심으면 안 나.”

“왜?”

“논이 아니잖여.”

복순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논에만 심어야 혀?”

“그려.”

“그럼 논 없으면?”

옥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땅 없는 사람은 쌀 못 심어?”

아이에게는 그저 궁금한 일이었다. 그러나 옥례에게는 몇 해 전 빼앗긴 아래 논을 다시 보는 것 같은 질문이었다. 모를 심고 물을 대던 자기 손, 문서를 읽지 못해 논두렁 밖으로 밀려났던 기석의 굽은 어깨가 떠올랐다.

옥례는 딸 곁에 쪼그려 앉아 손바닥을 펴게 했다. 볍씨 몇 알을 그 작은 손 위에 올렸다.

“잘 봐.”

“응.”

“쌀은 땅에서 나.”

“알어.”

“물도 있어야 혀.”

“응.”

“근디 제일 중요한 건 사람 손이여.”

복순은 제 손을 들여다보았다. 볍씨보다 조금 큰 손가락들이 꼼지락거렸다. 옥례가 그 손을 감싸 쥐었다.

“땅 주인은 바뀔 수 있어.”

“응.”

“나라 이름도 바뀌어.”

“응.”

“마을 이름도 바뀌고.”

복순이 새로 들은 말을 자랑하듯 말했다.

“서수.”

“그려. 근디 누가 논을 갈았는지는 땅이 기억혀.”

복순의 눈이 동그래졌다.

“땅이 말을 해?”

“아니.”

“그럼 어떻게 알아?”

옥례가 볍씨를 쥔 딸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대신 말해야제.”

새 이름은 관청의 문서에서 빠르게 퍼졌다. 장사꾼도 우편을 전하는 사람도 서수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예전 동네 이름을 쉽게 버리지 않았다. 행정의 이름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어도 사람이 살아온 기억까지 하루 만에 갈아엎을 수는 없었다.

장날이면 두 이름이 뒤섞였다.

“서수에서 왔소?”

“서수 어디?”

“그전 동일면 쪽.”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허지.”

“이제 서수라 해야 헌다잖여.”

“관청에서 밥도 서수밥으로 주디?”

사람들은 웃으며 옛 이름으로 길을 찾고 새 이름으로 문서를 썼다. 입은 기억을 따랐고 도장은 권력을 따랐다.

옥례에게 서수는 좋은 뜻을 가진 두 글자이기 전에, 빼앗긴 논과 그 논을 다시 갈아야 했던 사람들의 땅이었다. 일본인에게 ‘瑞穂’가 풍요의 이름이었다면, 농민에게 서수는 땀과 소작료와 빈 쌀독을 함께 품은 이름이었다.

그해 가을, 새 이름을 얻은 서수 한복판에 또 다른 소식이 돌았다. 용전의 좋은 논에서 난 쌀을 일본 황실의 의례에 바친다는 것이었다.

“우리 쌀이 거기까지 간다고?”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선뜻 기뻐하지 못했다. 상서로운 벼 이삭이라는 이름이 붙은 들에서, 정작 그 벼를 키운 사람들의 밥그릇은 넉넉하지 않았다.

옥례는 마당에 묻힌 볍씨를 다시 파내 복순의 손에 쥐여주었다.

“잘 간직혀. 심을 땅이 생기면 그때 심는 겨.”

복순이 볍씨를 꼭 쥐었다.

서수라는 이름은 이제 지도와 문서에 남았다. 그러나 그 이름의 진짜 내력은 글자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었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뿐 아니라, 그 이름 아래서 누가 논을 갈고 누가 쌀을 빼앗겼는지도 함께 기억해야 했다.

글: 최연호

첫 면의 연재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