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항에 쌓인 쌀가마
― 서수 들판에 묻힌 백 년의 약속

군산신문 연재소설 | 천년의 미(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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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가을, 용전의 논 한 구역에 새끼줄이 둘러졌다.
논둑에는 흰 종이가 매달렸고 농장에서 정한 사람만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는 손과 발을 씻게 했고, 피우던 담배도 끄게 했다. 그해 용전에서 난 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따로 거둔다는 소문이 돌았다.
최봉칠이 그 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사람들이 물었다.
“어떻대?”
“뭐가.”
“그 귀한 논 말이여.”
봉칠이 흙 묻은 손을 들여다보았다.
“논은 논이여.”
“근디 들어갈 때 손까지 씻으라 했다며?”
“깨끗해야 헌다고.”
춘매가 끼어들었다.
“그럼 우리 논은 더러워?”
“쌀은 깨끗해야 허고, 그 쌀 키우는 손은 더러워도 되는 갑제.”
사람들의 웃음이 멎었다.
그 논의 벼는 다른 논보다 먼저 베었다. 낫도 새것을 썼다. 벤 벼는 따로 말렸고, 상한 알과 작은 알, 빛깔이 다른 알을 골라냈다. 남은 쌀은 흰 천에 싸서 나무상자에 담았다. 일본 황실의 의례에 올릴 쌀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상자가 마을을 떠나는 날, 다섯 살 복순은 옥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길가에 서 있었다. 쌀을 실은 수레 앞뒤로 농장 사람들이 붙었다. 수레가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상자가 흔들리지 않도록 양옆에서 손으로 받쳤다.
복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엄니, 저 쌀 아파?”
“쌀이 왜 아퍼.”
“안 아픈디 왜 저렇게 붙잡고 가?”
옥례가 대답하기 전에 춘매가 말했다.
“귀하신 몸이라 그런가 보제.”
만돌이 수레 뒤를 보며 혀를 찼다.
“나도 흰 천 두르고 누우면 저렇게 모셔 갈라나?”
춘매가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가마니에 넣어도 아무도 안 가져가.”
사람들이 웃었다. 만돌은 억울한 얼굴로 제 몸을 내려다봤다.
“내가 쌀 한 섬보다 못혀?”
“밥은 쌀로 짓지 당신으로 지어?”
이번에는 옥례도 웃었다. 그러나 수레가 멀어지자 웃음도 함께 사라졌다.
용전의 특별한 쌀만 길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추수가 끝난 서수 들판에서는 날마다 볏섬과 쌀가마가 밖으로 나갔다. 농장 창고에서 무게를 달고 표식을 찍은 가마들은 소달구지에 실렸다. 마른 길에서는 바퀴가 흙먼지를 일으켰고, 비가 온 뒤에는 진창에 빠졌다.
기석도 소의 고삐를 잡았다. 수레에는 자신이 심고 거둔 쌀이 실려 있었지만 어디로 가는지, 얼마에 팔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농장 관리인이 내민 장부에는 숫자와 목적지가 적혀 있었고, 기석에게 필요한 말은 짧았다.
“군산으로 갑니다.”
“군산 가서는요?”
“배에 싣겠지.”
“어디 가는 배요?”
관리인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것까지 알아서 무엇 하오?”
기석은 더 묻지 못했다.
수레가 움직이자 쌀가마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논에서는 사람의 손을 거쳐 자란 쌀이 창고에 들어가는 순간 숫자가 되고, 수레에 오르면 농장의 물건이 되었다. 농민의 이름은 어느 가마에도 적히지 않았다.
복순이 수레를 따라 몇 걸음 뛰었다.
“아부지, 쌀이 어디 가?”
“군산항.”
“거기가 어디여?”
“바다 있는 데.”
“바다 다음에는?”
기석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일본까지 가겄지.”
복순이 수레 위의 가마를 올려다보았다.
“쌀은 좋겄네.”
“뭐가 좋아.”
“기차도 타고 배도 타잖여.”
기석이 웃었다.
“쌀이 세상 구경은 우리보다 많이 허겄다.”
옥례는 웃지 않았다. 쌀은 바다를 건널 수 있었지만 그 쌀을 키운 사람은 자기 땅을 떠나기도 어려웠다.
군산과 이리 사이에는 1912년 호남선의 지선인 군산선이 개통되어 있었다. 철길은 들판에서 거둔 곡식을 항구까지 빠르게 옮기는 길이 되었다. 증기기관차가 지나갈 때면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고, 굉음에 놀란 소가 길가에서 버텼다.
“저 쇳덩이가 쌀을 먹고 가는 겨?”
복순이 묻자 기석이 말했다.
“석탄을 먹고 간대.”
“쌀도 먹고 석탄도 먹으면 배부르겄네.”
기석이 웃었다.
“기차 배 속은 아무리 넣어도 안 차는 모양이여.”
그 말은 농담이었지만, 철길은 실제로 아무리 많은 쌀을 실어도 모자란 듯 날마다 항구를 향했다. 수레로 며칠씩 걸리던 길이 짧아졌다. 쌀은 사람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농장 장부의 숫자도 빠르게 불어났다.
그 무렵 임피 땅을 지나는 철길에는 아직 임피역이 업무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임피역이 문을 열어 사람과 물자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열 해 뒤인 1924년이었다. 그러나 군산선이 놓인 뒤부터 서수와 임피의 쌀이 철길을 따라 군산항으로 흘러가는 큰길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군산항에는 쌀가마가 산처럼 쌓였다. 창고 앞에는 달구지가 줄을 섰고, 부두에서는 지게꾼들이 쌀가마를 등에 지고 오갔다. 가마 하나가 어깨에 올라올 때마다 허리가 꺾였다. 쌀겨와 먼지가 땀에 들러붙어 얼굴은 금세 회색이 되었다.
창고 안에서는 일본인 미곡상과 조선인 중개인들이 쌀의 빛깔과 냄새를 살폈다. 손바닥에 쌀알을 놓고 굴려보거나 이로 깨물어 보았다. 어느 농부가 심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어느 논에서 물을 얼마나 지켰는지, 누가 장마에 무너진 둑을 밤새 막았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는 것은 품질과 무게와 값이었다.
“상등.”
판정이 떨어지면 가마에 표식이 찍혔다. 쌀은 등급을 얻었지만 사람은 여전히 이름이 없었다.
부두 끝에는 일본으로 갈 배가 기다렸다. 쌀가마가 널빤지 위를 건널 때마다 배가 낮게 울렸다. 가마들은 배 밑 어두운 창고에 차곡차곡 들어갔다. 서수의 햇빛과 탑천의 물, 농민의 땀이 바다를 건널 준비를 했다.
며칠 뒤 기석은 빈 수레를 끌고 마을로 돌아왔다. 옥례가 물었다.
“쌀 잘 보내고 왔어?”
“응.”
“바다는 봤고?”
“봤지.”
“배는?”
“집 몇 채를 포개놓은 것처럼 크더라.”
복순이 달려와 물었다.
“우리 쌀도 탔어?”
“그려.”
“쌀이 일본 가서 길 잃으면 어째?”
기석이 말문이 막혀 옥례를 바라봤다. 옥례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마니에 농장 이름이 적혀 있으니께 안 잃어버리겄지.”
“우리 이름은?”
옥례의 손이 멈췄다.
가마니에는 농장의 표식이 있었고 상인의 표가 있었다. 그러나 모를 심은 기석도, 김을 맨 옥례도, 볍씨를 골라낸 사람도 적혀 있지 않았다.
“우리 이름은 왜 없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열 해가 지나 임피역이 업무를 시작했을 때, 복순은 열다섯 살이 되어 있었다. 역전에는 장에 가는 사람과 짐꾼, 곡식을 실은 수레가 모였다. 기차가 들어오자 땅이 떨리고 흰 김이 승강장을 덮었다. 쌀가마들은 화차에 실려 군산항으로 향했다.
복순은 멀어지는 기차를 바라보았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쌀은 우리보다 세상 구경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제 복순은 조금 알 것 같았다. 쌀이 멀리 간다고 해서 쌀을 키운 사람의 세상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철길과 항구는 쌀의 길을 열었지만, 그 길의 주인은 농민이 아니었다.
기적 소리가 들판 너머로 길게 퍼졌다.
군산항의 배가 현해탄을 향해 떠날 때, 서수의 쌀은 농민의 이름을 남겨둔 채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글: 최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