瑞穂新聞 서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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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천년의 미(米)》 제12회

바다 건너 인정받은 쌀

― 서수 들판에 묻힌 백 년의 약속

수확한 쌀과 품평회 상장을 바라보는 농민들을 표현한 역사소설 자료 이미지
이미지 제작: 서수신문 편집국·AI 생성 이미지 ※ 실제 인물·현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24년 가을, 임피역에서 돌아온 복순의 머릿속에는 기차보다 쌀가마가 더 오래 남아 있었다.

화차에 실린 가마마다 농장의 표식이 찍혀 있었다. 상인의 이름과 등급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모를 심은 사람, 물꼬를 지킨 사람, 낫으로 벼를 벤 사람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엄니.”

“왜.”

“우리 쌀은 일본 가면 뭐가 돼?”

옥례가 보리쌀을 일며 대답했다.

“밥이 되겄지.”

“그것 말고. 유명한 쌀 된다며.”

기석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다 말했다.

“가와사키 농장 쌀은 벌써 유명혀.”

복순이 아버지를 돌아봤다.

“어떻게?”

“상을 두 번이나 받았대.”

“무슨 상?”

“금상.”

옥례가 코웃음을 쳤다.

“당신이 받은 것처럼 말허네.”

“내가 농사지었으니께 아주 틀린 말은 아니제.”

“그럼 상패는 어디 있어?”

기석이 입을 다물었다. 복순이 웃었다.

“아부지는 꼭 대답 못 할 때만 조용허더라.”

“누굴 닮아서 말이 저렇게 많어.”

“엄니.”

이번에는 옥례가 베개를 집어 들었다. 복순이 웃으며 마당으로 달아났다.

가와사키 농장의 쌀이 바다 건너에서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마을에 돌았다. 지역 향토자료에는 농장 시험답에서 재배한 고천수 현미가 일본 도쿄와 오사카의 박람회에서 두 차례 금상을 받았다고 전한다. 정확한 출품 연도와 대회의 명칭은 자료마다 다르게 전해졌지만, 서수의 쌀이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기억만큼은 사람들 입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고천수는 일본에서 다카치호라 부르던 품종이었다. 처음 시험답에 심었을 때 농장 기술자는 벼의 키와 낟알 모양, 수확량을 꼼꼼히 기록했다. 다른 논의 벼와 섞이지 않도록 짚단에도 표를 달았다.

농장에서는 씨앗부터 따로 골랐다. 알이 굵고 상처 없는 볍씨만 남기고, 모판의 싹이 고르지 않으면 다시 손을 댔다. 물 높이와 거름 주는 때도 관리인이 정했다. 농민들은 전부터 해오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농장은 그 일을 숫자와 표로 바꾸었다. 오래된 농민의 눈썰미와 손끝에서 나온 결과가 농장주의 경영 성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벼가 숫자를 알간디?”

춘매가 장부를 보며 묻자 봉칠이 말했다.

“벼는 몰라도 저 사람들은 알겄지.”

“그럼 숫자가 모도 심는가 보네.”

“조용히 혀. 숫자가 들으면 화내겄다.”

두 사람은 킥킥 웃으며 다시 허리를 굽혔다.

그때 어린 복순은 흙바닥에서 놀다가 그 말을 처음 들었다.

“뭐가 고천수여?”

옥례가 딸을 안아 올렸다.

“쌀 이름이래.”

“쌀도 이름이 있어?”

“그런갑다.”

“그럼 내가 심은 모도 이름 있어?”

기석이 웃었다.

“니가 언제 모를 심었다고.”

“저번에 한 포기 심었잖여.”

“그건 니가 이름 지어라.”

복순은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복순이 쌀.”

옥례와 기석은 웃었다. 하지만 농장 창고 안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벼는 길이를 재고 낟알은 모양을 비교했다. 쌀은 숫자가 되었고 품종은 이름을 얻었다. 농장주는 성과를 계산했다. 조선인 농민들은 여전히 허리를 굽혀 모를 심고 물을 대고 김을 맸다.

옥례는 시험답 곁에서 일하다가 고천수 이삭을 손끝으로 만져본 적이 있었다. 다른 벼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게 그렇게 좋은 겨?”

늙은 농부가 대답했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한대.”

“왜?”

“밥맛이 좋고 많이 난다나.”

“그럼 우리도 많이 먹겄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닌데 웃음이 났다.

첫 번째 금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농장사무소는 잔칫집처럼 들썩였다. 일본어로 적힌 문서가 오갔고 농장 사람들은 축하 사진을 찍었다. 마을에도 소식이 퍼졌다.

박람회장에 놓인 현미는 윤기가 돌고 낟알이 고르게 보였다고 했다. 심사한 사람들은 빛깔과 모양, 밥맛과 수확성을 따졌을 것이다. 서수 사람들은 그 먼 곳의 심사장을 본 적이 없었다. 누가 쌀을 맛보았는지, 어떤 말로 평가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금빛 상패가 왔다는 말과 농장 이름이 알려졌다는 소식만 바다를 건너 돌아왔다.

“우리 동네 쌀이 금상 받았대!”

“어디서?”

“동경.”

“동경이 어디여?”

“일본이지.”

최봉칠이 아는 체하자 금례가 물었다.

“얼마나 멀어?”

“엄청 멀제.”

“엄청이 얼마인디?”

봉칠이 버럭 소리쳤다.

“그걸 내가 어찌 아냐!”

사람들이 웃었다. 옥례도 웃다가 문득 물었다.

“누가 상 받은 겨?”

“쌀이 받았겄지.”

“쌀은 누가 키웠는디?”

웃음이 멎었다.

“우리가 키웠제.”

“근디 상은 누가 받았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어린 복순이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나도 쌀 키웠어.”

봉칠이 놀렸다.

“니가 심은 모 한 포기 때문에 금상 받은 갑네.”

“그럴 수도 있잖여.”

사람들이 다시 웃자 복순은 입을 내밀었다.

“그럼 내 이름도 써야제.”

이번에는 웃음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품종 이름과 농장주 이름은 바다를 건넜지만, 쌀을 키운 사람들의 이름은 서수 들판에 남아 있었다.

두 번째 금상 소식이 왔을 때 사람들의 놀라움은 덜했다.

“또 받았대?”

“이번에는 오사카여.”

봉칠이 말했다.

“다음에는 우리 집으로 보내라 혀.”

“왜?”

“나도 금상 받은 쌀밥 좀 먹어보게.”

금례가 웃었다.

“니가 먹을 쌀이나 있어?”

사람들이 웃었고 봉칠도 따라 웃었다. 그러다 제일 먼저 웃음을 거뒀다. 농담이 농담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금상이 두 개가 되어도 모내기 날의 허리는 여전히 끊어질 듯했다. 김매기철이면 손톱 밑에 흙이 박혔고, 장마가 길면 밤새 둑을 지켰다. 가뭄이 들면 남의 논과 물 한 줄기를 놓고 싸워야 했다. 달라진 것은 농장사무소 벽에 자랑할 이야기가 하나 더 생긴 것뿐이었다.

열다섯 살이 된 복순은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농장사무소에 갔다. 벽 높은 곳에 일본어가 적힌 상장과 오래된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저게 금상이여?”

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순은 사진 속 사람들을 한참 바라봤다. 양복 입은 농장 관계자들의 얼굴은 있었지만 옥례도, 기석도, 봉칠도 없었다.

사진 아래에는 잘 정돈된 볏단이 놓여 있었다. 볏단 옆에 선 사람들은 모두 허리를 펴고 있었다. 사진 밖의 농민들은 그날도 논에서 허리를 굽혔을 것이다. 복순은 사진의 가장자리까지 살펴봤다. 혹시 아는 얼굴 하나가 작게라도 찍혀 있을까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사진 찍을 때 아부지는 어디 있었어?”

“논에 있었겄지.”

“엄니는?”

“논에 있었겄지.”

“그럼 쌀 키운 사람들은 다 논에 있고, 안 키운 사람들만 사진 찍은 겨?”

기석은 헛기침만 했다.

“아부지.”

“왜.”

“쌀이 상 받으면 누가 좋은 겨?”

기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밥상에는 보리밥이 올랐다. 복순은 그릇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금상 받은 쌀은 무슨 맛이여?”

옥례가 말했다.

“쌀맛 나겄지.”

“우리도 먹어봤어?”

“이 들판 쌀을 우리가 왜 못 먹어봤겄어.”

복순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보리밥 먹잖여.”

옥례의 숟가락이 멈췄다.

밖에서는 잘 여문 벼가 바람에 고개를 숙였다. 바다 건너에서 인정받은 쌀을 키운 집의 밥상에는, 그 쌀이 없었다.

글: 최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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