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것도 끝이 있다
― 서수 들판에 묻힌 백 년의 약속

1926년 7월, 가와사키 농장이 이엽사로 넘어갔다는 소식이 서수에 퍼졌다.
사람들은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와사키가 죽은 뒤에도 농장은 그대로였고, 주인이 바뀐다고 논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주인 이름만 달라지는 거 아녀?”
봉칠이 묻자 기석이 말했다.
“이름 바뀐다고 소작료가 내려가겄냐.”
춘매가 혀를 찼다.
“올라가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그 말은 오래지 않아 맞았다.
새 농장 쪽에서는 소작지를 다시 살피고 장부를 고쳤다. 관리인은 논의 등급과 수확량을 따졌고, 소작권을 계속 줄 것인지도 저울질했다. 누구에게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지 농민들은 알지 못했다. 흉년이 들어도 부담은 줄지 않았고, 농장이 요구하는 몫을 채우지 못하면 다음 해 논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
그해 가을, 관리인이 기석의 집에 왔다.
“내년 소작 조건이 달라질 수 있소.”
“어떻게 말입니까?”
“정해지면 알게 될 거요.”
“농사짓는 사람한테 먼저 알려줘야 허는 것 아닙니까?”
관리인이 기석을 빤히 보았다.
“논을 계속 부치고 싶으면 말조심하시오.”
관리인이 돌아간 뒤 옥례가 마당으로 나왔다.
“뭐래?”
“아직 정해진 게 없대.”
“정해진 것도 없는 사람이 협박은 잘 허네.”
복순은 궤짝에서 종이를 꺼냈다.
“날짜부터 써야겄다.”
기석이 딸을 막았다.
“쓰지 마.”
“왜?”
“괜히 그런 거 남겼다가 누가 보면 어쩌려고.”
“안 쓰면 저 사람이 그런 말 안 한 게 돼?”
“그건 아니지만….”
“그럼 써야제.”
기석은 딸의 손에 들린 붓을 보았다. 예전 같으면 호통부터 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자신이 삼킨 말을 딸이 종이에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마을의 말은 거칠어졌다. 소작료가 너무 많다는 불평, 수세가 부당하다는 원망, 소작권을 빼앗겼다는 울음이 집집마다 쌓였다. 농장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도 논둑에 모이면 목소리가 커졌다.
“언제까지 참어야 혀?”
누군가 물었다.
“논 뺏길 때까지 참어야지.”
“논 뺏기면?”
“그때는 참을 논도 없겄네.”
사람들이 웃었다. 그러나 웃음 끝이 쓰렸다.
복순은 그 말도 적었다. 글씨가 느려 말을 다 따라갈 수 없으면 핵심만 남겼다.
‘참을 논도 없다.’
어느 밤 봉칠이 기석의 집을 찾아왔다. 뒤이어 이웃 농민 둘이 더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막걸리부터 찾았을 사람들이 그날은 방문부터 닫았다.
봉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산리 쪽에서 사람들이 모인대.”
“왜?”
“소작 문제 의논하려고.”
기석이 고개를 저었다.
“농장이 알면 다 끝장이여.”
“가만있어도 끝장나게 생겼잖여.”
“누가 앞장서는디?”
“김영준이라는 사람이 방을 내준다더라. 동생 김영현도 방학이면 내려와 농민들하고 이야기헌대.”
옆에 있던 농민이 말을 보탰다.
“장태성이라는 젊은이도 온다더라. 전주에서 학교 다니다 일본인 교장한테 맞섰다가 잡혀갔던 사람이라던디.”
다른 마을에서는 소작인이 농장 사무소에 따지러 갔다가 다음 해 논을 주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소문만으로도 사람들은 입을 닫았다. 농장에는 장부와 경찰이 있었고 농민에게는 가족과 빈 쌀독이 있었다.
“나 하나 참으면 식구는 산다.”
한 농민이 말했다.
봉칠이 되물었다.
“그렇게 참아서 지금 살 만혀?”
농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참는 것은 목숨을 지키는 방법이었지만, 오래 참는 동안 삶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기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젊은 사람들이 뭘 안다고.”
문밖에서 듣고 있던 복순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아부지는 늙은 사람이면 다 아는 줄 알어?”
“너는 들어가!”
“여기가 우리 집인디 어디로 들어가?”
봉칠이 웃음을 터뜨렸다.
“기석이 니가 제일 먼저 조직해야 할 사람은 니 딸이겄다.”
기석이 버럭 소리쳤다.
“조직은 무슨 조직!”
복순이 종이를 펼쳤다.
“방금 조직이라고 했어.”
“그것까지 쓰지 마!”
방 안에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웃음이 잦아들자 사람들은 다시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누가 말을 옮길지 몰라 두려웠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으면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1926년에서 1927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서수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세 개의 불씨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김영현은 농업을 배우면서도 농민이 왜 가난한지를 물었다. 농사를 잘 지을수록 지주의 창고는 차는데, 어째서 농민의 쌀독은 비는지 묻고 또 물었다.
형 김영준은 사람을 모을 방과 밥을 마련했다. 누가 믿을 만한지, 어느 집에서 모이면 눈에 띄지 않는지, 겁먹은 사람이 다시 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다.
장태성은 마을과 마을 사이를 걸었다. 그는 농민에게 거창한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계약서를 읽을 수 있는지, 소작료가 어떻게 정해졌는지, 혼자 항의했다가 논을 잃은 사람이 없는지를 물었다.
어느 날 밤, 김영준의 집에 농민 몇 사람이 모였다. 방은 좁고 등잔불은 어두웠다.
누군가 농담했다.
“빛을 보자고 모였는디 방이 너무 어둡네.”
김영준이 등잔 심지를 올렸다.
“기름값 내면 더 밝게 해주지.”
사람들이 웃었다.
웃음이 끝나자 한 농민이 말했다.
“이엽사가 또 소작권을 뺏는대.”
방 안이 조용해졌다.
김영현이 물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끼리 함께 말하면 안 됩니까?”
“누가 먼저 말혀?”
“먼저 말한 사람만 잡혀가면?”
장태성이 대답했다.
“그래서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있으면 안 잡혀가?”
“잡혀갈 수도 있지요.”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장태성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 끌려가고 나머지가 모른 척하면, 다음에는 또 한 사람을 데려갈 겁니다.”
기석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집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가면 농장에 찍힐 것 같고, 가지 않으면 이대로 평생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았다.
옥례가 물었다.
“갈 거여, 말 거여?”
“어딜?”
“모르는 척은. 사람들 모이는 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당신은 귀가 몇 개여?”
“두 개지.”
“그 두 개로도 동네 소문을 다 들었는디, 농장이라고 못 들었겄어?”
복순이 이불 속에서 말했다.
“아부지 안 가면 내가 갈 겨.”
기석이 벌떡 일어났다.
“너는 절대 안 돼!”
“그럼 아부지가 가.”
“이것들이 둘이 짰어?”
옥례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제 알았어?”
기석은 한숨을 쉬었다. 한참 뒤 옷을 주워 입었다.
“어디 가?”
복순이 묻자 기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물꼬 보러 간다.”
“겨울밤에?”
“니는 말이 너무 많어.”
기석이 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논은 얼어 있었고 물꼬를 볼 까닭은 없었다. 그러나 마을 끝 작은 집에는 등잔불 하나가 켜져 있었다.
기석은 그 불빛을 향해 걸었다.
혼자 참던 사람들이 하나둘 같은 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아직 조합이라는 이름도, 싸움의 날짜도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참는 것도 끝이 있다는 것을.
글: 최연호